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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변 잡기 (雜記)/기타 기록

존중은 두려움에서 온다

by UTPasiirs 2015. 9. 21.

개인적으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라는 주장을 정말 싫어한다. 이건 자주방위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약자들의 폭거와도 같은 논리다. 이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폭력이 실제로 존재하고 어떤 종류이든 사람의 삶을 완전히 파괴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성폭행은 실제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성의 인격과 삶을 완전히 파괴해버린다. 반대로 성추행 누명이라도 뒤집어 쓰면 피해자는 여자의 세치 혀놀림에 인생이 파괴된다. 근무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사람은 이미 공공연한 사회현상이고 성별에 따른 역할 차이를 차별이라며 되려 역차별의 근거로 삼는 웃지못할 행태가 여성부라는 '정부기관'의 이름으로 태연히 자행되고 있다. 

 

양성갈등, 지역균형발전, 성소수자인정, 빈부격차해소, 다문화, 다 말로는 좋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성별이 역전된 남녀역차별이 발생하고 지역이기주의가 도를 넘어섰으며 이성애자의 정당한 보이콧이 인성을 의심받으며 폐지줍는 노인이 종부세를 반대하고 사회근간 산업직군에는 불법체류자들이 득실거린다. 정작 먹어야 될 사람은 못들어가는 나라 곳간에 쥐새끼들만 가득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권리에 따른 처벌과 의무가 마땅한 무력의 비호를 받지 못한 결과이다. 외국인 비례대표 이자스민의 의정활동을 상기해보라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만 봐도 의무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권리는 불법체류자 자식들이 챙겨간다. 얼마나 겁을 상실했으면 이런 법안을 발의했을까? 이는 세금내는 국민의 권리를 좆으로 알기 때문이다.

 

현 사회는 불합리에 대해 무력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허울만 좋은 입바른 소리로 탁상공론만 반복한 결과 당연한 가치와 주장조차 두서없어지고 진실은 가치를 잃어버렸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부정선거 규탄 촛불시위만 해도 몇 십만이나 되는 사람이 거리로 나와 어깨가 빠져라 촛불을 휘둘렀지만 결과는 어떤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도리어 촛불좀비니 선동이니 인터넷으로 조롱이나 받지 않았는가. 국민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아직도 갈길이 참 멀다는 생각이 든다.

 

존중이라는 것은 함부로 했다가는 내가 죽을 수 도 있겠구나 하는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어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라는 말은 이 근본을 뒤흔들어 놓는다. 경찰이 총이나 진압봉 안쓰고 범죄자를 제압하려 해봐라 어떤 미친 범인이 경찰에게 잡혀줄까? 되려 범인이 휘두르는 폭력에 인명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운나쁘게 그 주변을 지나가던 일반인이 대부분일거고 그리고 그건 이 글을 읽은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이런 기본적인 두려움을 전혀 교육시키려 하지 않고 있다. 인권이랍시고 범죄자 처벌은 솜방망이로 해놓아 그 권리 아래 온갖 잡놈년들이 설치는 까닭도 이런 두려움으로터 비롯된 존중과 예절이 전혀 교육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덮어놓고 폭력은 나쁘다 라고만 주입해놓으니 한마디로 개념을 상실한 것이다.  

 

맘충이나 진상손놈, 된장녀, 김치녀, 씹치 모든 것이 이런 무력에 대한 두려움, 즉 처벌의 정당성에 대한 교육 부실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막말로 싸가지 없는 놈은 그 자리에서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패도 된다고 가정해보자. 예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지켜질 것이다. 세간에 분노조절장애랍시고 설치는 병신들이 어깨들 앞에서는 아주 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참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나라는 순종적인 호구를 양성하는 사회를 용인하려는 소시민들끼리의 개싸움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권력자들과 기만자들로 가득차 있다. 진부하고 유치하지만 정의 없는 힘보다 힘 없는 정의가 더 나쁘다는 말이 요즘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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