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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변 잡기 (雜記)/기타 기록

우리 사회는 광신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by UTPasiirs 2015.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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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면 사회 구성원들에게 좀 더 약자에게 관용있고 베풀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가르치지만 정작 이러한 배려를 이용하고 배신하는 자들을 단죄하는 방법은 전혀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다. 무시하고 지나가라, 네가 더 나은 사람이다, 하늘은 알고 있다, 같은 입바른 소리나 하며 정신승리나 하라고 가르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속에서 천불이 나고 쌍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당장 내 허기를 채워야할 밥 한공기가 남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걸 베품과 관용이라 가르칠 바에야 차라리 머리깎고 절로 들어가라는 소리가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과연 용서일까?

 

위의 EBS 짤도 보다시피 와인을 엎지른 웨이터를 '용서'하라는 것은 가르치고 있지만 정작 실제로 잘못을 범한 웨이터를 처벌하는 과정이나 정당하게 배상을 받는 방법 같은건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고있다. 웨이터를 나무라는 행동을 단순 언어폭력으로 호도하고 인격을 들먹이며 악인으로 만드려는 의도만 녹아있다. 거기에 전세계 CEO들의 말을 빌려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을 주기보다 가증스러움만 증폭시키고 있다. 잘나가는 CEO의 말은 무슨 진리의 대명사라도 되나? 사적 이익을 위해 돈을 버는 인간들이 놀리는 세치 혓바닥에 무슨 진리가 녹아있단 말인가? 권위를 빌릴 생각이었으면 간디나 테레사의 말을 인용했었어야지. 천박한 물질자본주의 논리의 연장선에 있는 관용 따위는 개나 줘버릴 소리다. 

 

물론 웨이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기본이 안된 것이 맞다. 하지만 손님한테 음식물을 쏟은 웨이터 역시 떳떳할 이유는 전혀 없다. 서비스업 종사자로서의 기본도 안된 이런 자가 남의 기본을 운운하는 것은 말 그대로 언어도단이다. 만약 상대가 엎지른 음식에 알러지라도 있는 사람이었거나 당장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던 사람이었다면? 똥묻는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고 했다. 사람의 기본적인 행동을 두고 품격을 운운하고자 한다면 그전에 먼저 정당한 피드백을 제시했어야 한다. 실수니까 당연히 봐줘야 한다는 논리는 부처나 예수 앞에서나 먹힐 소리다.

 

관용과 용서라는 것은 정당한 배상이 따라오는 것을 전제로 해야한다. 인간으로써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를 주장하고 싶으면 용서 역시 반드시 해야만 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이러한 '관용'을 피해자의 '의무'로 만들고 오히려 가해자의 '권리'로 삼으려고 한다. 이런 앞뒤가 뒤집힌 발상이 요즘은 너무 당연시 되고 있다. 가해자가 되려 왜 내가 '사과'했는데 '용서' 안해주냐는 식으로 적반하장으로 나서는 것이다. 

 

결코 용서는 최고의 복수가 아니다. 최고의 복수는 피해자가 용서해주기 전까지 법의 심판 아래 두 번 다시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재기할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가게 만들고 이름을 바꾸게 만들고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자살을 하게 만든다. 너무 구석구석 병들어서 이제는 처음 발병한 곳이 어디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총체적 불구상태인 것이다. 여태껏 썩어온 만큼 회복에도 같은 시간이 걸린다면 이미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답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면.. 밑도 끝도 없이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 가르치는 사회는 사회가 아니다 종교다. 종교는 신전과 자신의 마음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대한민국을 사이비 종교로 점철하려는 행위를 지금 당장 중단하고 국민에게 헛된 교리를 강요하지 말 것을 촉구한다. 적어도 나는 그게 올바르다고 교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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