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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변 잡기 (雜記)/자기 기록

졸업, 구직활동 그리고 취업

by UTPasiirs 2018. 8. 31.

 

졸업을 약 9개월 앞둔 시점부터 구직활동을 병행해왔다. 구직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어느정도 윤곽을 잡아놓은 상태였지만 고용안정성(정규직)및 정년이 보장될 것, 급여수준이 업계 평균 이상일 것, 전공을 살릴 수 있을 것, 정출연 연구소 혹은 공기업일 것,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곳은 많지 않았다.

 

때문에 구직 활동에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면접장에서 만났던 경쟁자들도 쟁쟁하기 이를데 없었다. 영미유럽권 해외 박사는 물론이거니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고생이 짐작되는 화려한 현장 커리어를 가진 분들과 경합하며 스스로도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충분하겠거니 생각했던 스펙을 부단히 보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산해보니 총 31번의 지원 중 서류에서 10번, 최종 면접에서 18번 불합격했다. 요즘 같은 취업 빙하기에 이 숫자는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1년에 걸친 28번의 낙방은 문자 그대로 인고의 시간이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높아졌었던 알량한 자존심은 깨끗이 표백됐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들은 다한다는 정출연 전문연구원 대신 일반 군복무를 수행하고 다학위 습득을 위해 남들보다 더 투자했던 몇 년의 시간이 내 발목을 잡는건 아닌지, 자격증이 부족한 건 아닌지, 전공을 잘못 선택한건 아닌지 등등 온갖 잡생각에 시달렸다.  

 

1년의 구직기간 중 정부 유관 부처의 무기계약직이나, 민간기업의 이런저런 오퍼를 받으면서 어떻게든 불안정한 신분만이라도 해소해놓고 봐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또 실제로 시도하기도 했었지만, 얄궂게도 그때마다 번번히 무산된 끝에 겸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고, 그로인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는건.. 정말 사람의 미래라는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어느정도 마음이 정돈되었다. 합격이라는 과실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신입 연수를 받을때 인사담당자분께서 평균 60:1, 최대 200:1 경쟁률이라는 수치를 말씀해주셨을때는 머릿 속에 복잡한 표현들이 떠올랐지만 이것을 풀어내기에는 아직 내 어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저런 경쟁이 있었을거라고 예상했다면 지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또한 이것 이외에도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는 다른 미래도 있지만 지금은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성인이 되고 15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이켜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일들이 있겠지.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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