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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변 잡기 (雜記)/서브 컬쳐

마지널 오퍼레이션 후기

by UTPasiirs 2014. 9. 7.

- 1권, 절제된 문장, 수준높은 위트

 

마지널 오퍼레이션이라는 소설을 얼마전에 구매했습니다. 최근 1년사이에 구매한 소설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두달전에 구매한 비슷한 장르인 백련의 패왕과 성약의 발키리를 봤을때도 괜찮다고 느꼈지만 이쪽이 더 제 취향에는 맞다고 느꼈습니다. 문체는 어차피 국내 정발 번역본이라서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순 없었지만, 문장이 담백하며 흐름은 자연스럽고 던져지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일지 형식의 글 구조도 세련되죠.

주인공의 의식수준은 몰입하기에 부담없을 정도로 상식적이었고 허구가 섞이기는 했지만 세부적인 설정이나 묘사는 과도하지 않았습니다. 한문장 한문장 생각해 가면서 쓴 글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정도로 선택된 단어는 일관성이 있었고 표현은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담백함이 지나쳐 무미건조해지지 않도록 위트도 적절하게 섞여있었습니다. 격이 떨어지는 위트가 아니라 몇번씩 곱씹을 수 있는 단락이 많이 있습니다. 오랜시간을 들여 단어를 점검하고 수정을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내용에 관련해서 한문장으로 정리하면 민간군사회사에서 일하게 된 초보 오퍼레이터(작중내 표현으로 OO)의 심적 변화와 성장인 일종의 성장물인데도 불구하고 라이트노벨 답지 않게 진중하고 밀도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이고깽물과는 계통이 다릅니다. 이것이 백련의 패왕과 성약의 발키리와의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모에요소를 끼워넣은것도 그럴듯한 설정을 바탕으로 납득이 될만큼 소설 내 묘사는 구체적이고 명확했습니다.

한편, 대출 받아 엘프귀개조 수술받고 신용불량자 되서 용병으로 강제전직한 소피아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건 좀 뜬금없기는 했지만 이는 일단 기본설정이 오타쿠였던 주인공이 일본귀국후에 사건을 연결시키기 위한 복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권이 나와봐야 알수 있겠습니다만 소피아라는 캐릭터를 작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군요.

- 2권, 역량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아쉬운 범작

 

지난권 말미에서 소년병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는 부분으로 마무리를 했었는데, 어떻게 책의 반절가량을 일본 문화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떼워버릴수가 있는지..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전혀 생소한 문화권에서 온 아이들이 일본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바탕 일을 저지르는 모양새를 예상했는데 별다른 설명이나 묘사도 없이 알아서 다 이해(?)하고 넘어갔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어리둥절 하더군요.

저자후기에도 '입국하자마자 위조 관광 비자가 들통나는 바람에 바로 추방당하면 그걸로 이야기가 끝나버리니까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아닌 변명같은 코멘트가 적혀있었기도 했지만, 주인공 아라타의 거의 모든 신상명세가 낱낱이 밝혀져 있고 심지어 민간군사회사 설립을 목적으로 소년병들을 데리고 들어온 사실까지 다 드러난 마당에서 정작 가장 핵심으로 다루어야 할 일본 입국 과정을 그냥 어물쩍 넘겨 버리더군요. 구성의 긴밀성은 둘째치고 전개의 무책임함에 도저히 집중이 안되었습니다.

또 작중에서 일본 정부 측의 아이덴티티가 너무 빈약한것도 매우 큰 문제였습니다. 인위적으로 불순조직들간 항쟁을 유도해서 공멸시키려는 더러운 짓도 서슴치 않는 냉혹한 기관인 듯 하다가도 아라타의 민간군사조직만 두고 '당신들은 국익에 합치합니다.' 라고 어이없이 간단히 선언해 버리는가 하면 그 이후에는 또 '작전은 실패했으니까 계약은 무효'라며 일본에서 나가달라고 종용하는 등 유체이탈화법에 다중이 짓이나 벌여대는 근본없는 막장 기관으로 표현해 놨더군요. 전술이나 전쟁묘사 같은 요소들은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한, 연애에 쑥맥인 벽창호 주인공이라는 것도 솔직한 심정으로 신물이 나는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한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 감정과 문화의 수평교환이 아닌 여주인공에게 유카타를 입히고 일본음식을 먹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국문화를 강제하는 표현에는 정말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1권에서 내내 불안했던 '소피아'라는 케릭터의 경우 '알고보니 상복입고 아키하바라를 전전하며 아라타를 추모하고 있었다' 라고 묘사해버려서 이건 실망을 넘어서 거의 절망. 한술 더 떠서 시종일관 앵무새처럼 '아이들이 그저 더욱 행복해지길 바란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지론만 강요하는 주인공의 언동이나 행동 때문에 이야기는 점점 막장으로..

적어도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풀거였으면 차라리 지브릴이나 기타 소년병들과 깊은 유대감을 구축할 사건이라도 하나 터뜨려서 당위성이라도 마련해야 하건만 그런것도 전혀 없었고.. 말 그대로 뜬금없이 주인공을 무슨 해탈한 성인군자로 만들어놓더군요. 설령 몇보 양보해서 진짜로 타고난 주인공의 성정이 성인군자라는 설정이라면 어찌됐건 선진국인 일본입국에 성공한 이상 애들한테 크로스보우 쥐어주고 전쟁질 시키기 이전에 정식 망명절차를 밟도록 돕고 본인도 남아서 그들을 돌보거나 아니면 홀로 일본을 떠나는 과정을 그려야 할텐데 그런것도 전혀 아니었습니다. 작중에 이토우와의 대화에서 망명이 불가능하다는 식의 대화가 오고 갔을때도 그렇게나 똑똑한 주인공이 적인지 아닌지 애매한 상대의 말만 믿고 그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구요.

차라리 위의 식으로 전개가 됐다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캐치하고 있는 국가기관과 소년병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불화와 알력을 묘사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후에 있을 소피아와의 자연스러운 만남도, 일본내 민간군사회사를 조직하기까지 소년병들과 자연스러운 유대를 쌓을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일이 잘못되어 일본을 떠나게 되더라도 '큰 흐름에 저항하는 인간적인 히어로의 활약상'을 국가기관과의 접전을 통해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반드시 밑밥이 깔려야 할 이야기들의 알맹이 빠진 근본없는 전개, 곁다리 설정에만 신경쓰느라 망한 수많은 등장인물들, 공감되지 않는 모에 요소들과 같은 문제들이 뒤엉킨 결과 책 한권이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전개상 당연히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상식적인 일들에 대해 '설정'이라는 한계를 그어 어거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번 마지널 오퍼레이션 2권은 한마디로 그냥 망했다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는 결국 저자의 역량이 바닥을 드러냈다고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안타깝지만 이것도 그냥 범작의 영역에 머무를 그런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뒷이야기가 신경쓰여서 계속 사서 읽기야 하겠지만 이후로 이 책에 관해서 포스팅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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